대구 독립영화 현장을 시작으로 2018년 첫 단편영화 <신세계> 연출 후 2021년 장편영화 <희수>를 연출하였다.


서민기의 노스텔지어

지난 2021년이 시작될 때 쯤 나는 SNS에 올해 계획은 ‘하려고 하지 말자’라는 글을 올렸다. 그럼에도 지독히 정신없이 바쁜 한 해를 보냈다. 물론 새롭고 기쁜일들이 내게 벌어졌지만 나에게 엄격한 편이라 자책과 반성, 이름모를 불안과 무거운 마음을 지닌 채 꾸역꾸역 시간이 흘러가기 만을 바랐다. 공연에 초대받은 당일, 그날도 여러 마무리 짓지 못한 일들에 파묻혀 정신이 없었고 겨우 일을 정리하고 부랴부랴 택시를 잡아타고 공연장소로 향했다. 택시 안, 그제서야 초대받은 공연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았다.

낯선 이름의 악기들, 새로운 조합... 신기하고 낯설었다. 나는 라이브 공연이나 연극들을 잘 보러 가지 못한다. 같은 시간과 공간에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이들의 모습을 마주하는 것이 늘 긴장되고 무서워서 인데, 그래서 나는 영화를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요즘은 용기를 내는 중이라 가능했던 건지 약속을 지켜야 하는 마음 때문인지 여러의미로 떨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그곳으로 향했다.

앞산 아래 자리 잡은 어느 까페 지하공간. 한끼도 먹지 못해 까페에서 밀크티를 한 잔 시켜 후루룩 마시고, 긴장을 완화시켜주는 약을 한 알 삼키고는 공연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나는 그 날, 서민기의 노스텔지어를 경험 하였다. 어둠이 깔리고 저 구석 작은 빛 아래 고요한 떨림의 소리가 공간을 채워나갔다. 그 소리는 생전 처음 느끼는, 호흡이 온전히 전해지는 어떤 그런 것 이였다. 모두가 집중하기 시작했고 나는 귀를 기울였다. 그는 구석에 한참을 서서 숨을 내쉰다. 나는 눈을 감았다. 자리를 이동한 그는 작은 빛들과 촛불에 의지한 채 다양한 모습의 소리들을 내뿜기 시작했다.

‘이걸 음악이라 표현해야 할까, 일기인가, 사진인가, 영화인가?’ 그의 소리와 나의 생각들이 부딪혔다. 그의 호흡과 기억과 이야기들이 악기와 목소리, 몸의 소리들로 표현되었다. 놀라운 일이였다. 명확한 가사가 있는것도, 영화처럼 정확히 움직이는 이미지들로 이뤄져있는 것도 아닌데 이건 마치 서민기라는 한 사람의 지극히 개인의 서사가 꽉 찬 스토리텔링을 온전히 전해받는 기분이였다.

나는 공간도, 사람들도 잊은 채 그 순간에 집중했다. 소리는 이미지가 되었고 그 이미지들은 어디론가 계속해서 흘러갔다. 바다의 파도가 되었다가 죽음이 되었다, 그리움이 되기도 하였다. 눈물이 났다. 부끄러울 새 없었다. 오롯이 그 순간에 내가 있었다. 아마도 그곳에 있었던 모두가 분명하게도 나와 같은 마음으로 전해받았으리라 생각한다.

복합적인 심정으로 인사도 하지 못한 채 그 자리를 빠져나와 한참을 걸었다.

나에게 충만하고도 신기한 새로운 시간이면서도 그의 이야기를 그저 편안하게 앉아서 전해받았다는 것이 문득 미안하게도 느껴졌다. 어떤 귀한 창작물을 보거나 들었을때, 그런 마음이였으리라. 나는 그 공연을 경험하기 전과 후, 그리고 지금 분명 달라졌다는 생각을 종종한다.

영화인 동료들과 연말에 인사를 나누는 자리가 있었는데 최근에 새로 알게된 어느 배우와 담배를 나눠피고 있었다. 배우A는 내게 물었다. ‘올해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언제인가요?’ 나는 답했다 ‘제가 얼마전에 어느 공연을 보고 왔는데요...’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 날, 서민기의 노스탤지어를 경험한 순간. 정말로 그랬다.

앞으로의 그의 공연에는 빠짐없이 가보려한다. 그의 이야기에 깊이 공감하며 응원과 감사의 마음을 보낸다. 마음을 전해주어 고맙습니다.

-뾰족이는 바다가 ( )처럼 일렁이는, 제주 앞바다에서 2022년, 감정원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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