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는 책이랑’을 운영하고 에세이 ‘안녕 엄마 안녕 유럽' 저자이다.


초등학교 교실 교탁 앞에서 한 아이가 울고 있다. 옆에서 선생님은 아이에게 질문했다. "창녀가 무슨 뜻이니?" 아이는 울면서 대답을 한다. 그 아이가 바로 나다.

손발의 떨림이 내 온몸을 타고 목으로 이어져 목소리까지 떨렸다. 내 눈은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다. 틀렸다. 이래 선 내 앞에 있는 아이들에게 제대로 내 말이 전달되지 않는다. 눈물이 앞을 가려 아이들의 표정을 볼 수 없지만 상 상한다. 울음 섞인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한 얼굴을 하고서 책상에 앉아 있다. 여기서 벗어나고 싶다. 쉬이 그쳐지지 않는 울음에 더해 호흡이 가빠왔다. 숨을 크게 쉬어 보지만 호흡은 잦아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내 눈앞은 까맣게 변했다.

불이 다 꺼진 까만 공연장 한쪽 구석에서 노란 불빛이 천천히 비치고, 나무관을 타고 들려오는 생황의 호흡 소리가 아주 가늘게 들려왔다. 생황을 부는 숨소리가 울음소리처럼 들렸다. 공연장 구석에서 진행되던 생황연주가 끝나고 무대 중앙으로 위치가 바뀌었다. 곧이어 태평소가 공기를 가르며 귓가에 꽂혔다. 바닥에 내 키만 한 크기로 놓여 있던 관악기 '디저리두'의 긴 울음소리가 함께 들렸다. 공기를 길게 쭉 가르는 태평소 연주와 디저리두의 낮고 묵직한 긴소리는 전혀 다른 소리를 냈지만 향하는 방향은 같았다. 두 악기는 길게 소리를 뿜어내며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대신해주고 있었다. 내가 초등학교에서 사랑했던 공간은 도서실이었다. 마침 도서실 청소 담당을 맡게 되었고 선생님 회의 장소로 도서실이 사용되면서 찻잔을 준비하게 됐다. 어느 날, 같은 반 남자아이가 복도에서 찻잔을 나르던 나를 향해 '창녀'라고 불렀다. 나는 그 뜻을 정확히 알고 있었고, 어디선가 날아 온 돌이 내 머리를 깨부순 것 같았다. 그리고 어느새 나는 교실 중앙에 서 있었다. 선생님은 나에게 창녀의 뜻을 물었다. 나는 울고 있었지만 계속 내가 겪은 일에 대해 말을 이어 나갔다. 이어 선생님은 나를 창녀라 부른 남자아이를 불러 세워 내게 사과 하라고 말했다. 모든 것이 폭력적인 시간이었다.

아기가 태어나서 내뱉는 울음이 바로 호흡을 내뱉는 것이라고 한다. 울음이 곧 호흡이라면 호흡은 숨을 쉰다는 것 이고, 숨을 쉰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것이다. 내게 운다는 것은 내가 여기에 살아있다는 뜻이다. 어렸을 때는 할머니 손에서 커왔기 때문에 그의 독실한 개신교 신앙관을 따라야 했다. 할머니의 신앙 규칙 중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것 은 새벽 5시에 시작하는 기도회에 참석하는 것이었다. 새벽 다섯 시. 원하든 원하지 않든 매일 그 시간에 집을 나서 어두운 작은 교회에 도착하면, 나는 때때로 울음소리를 터트리곤 했다. 정제된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이야기들이 호흡으로 터져 나왔다. 울음소리는 꾹꾹 참다가 조금씩 흐느낄 때도 있었고, 큰 울음소리를 지르다가 목이 쉬기도 했다. 계속 울다 보면 어느새 내 가슴께를 턱턱 치고 있었다. '쿵, 쿵, 쿵, 쿵, 쿵' 무대 우측 편에서 바디퍼커션이 가슴을 치며 리듬을 만들고 있었다. 손바닥을 살살 비벼 내는 작은 소리에서는 바다에서 들리는 파도 소리가 들렸다. 바디퍼커션의 연주가 그치고 곧이어 피리 소리가 시작됐다. 가는 피리 소리 옆으로 바디퍼커션의 수어가 이어졌다. 자신의 몸을 악기처럼 쓰던 바디퍼커션이 수어로 운다. 알아듣지 못한 수어가 계속됐지만 그 울음을 들었다.

옥상으로 올라가 하늘을 한 번 보고, 땅을 한 번 바라봤다. 부모라는 존재는 있지만 어린 나를 책임지고 있는 건 작고 머리가 하얀 늙은 할머니뿐이었다. 내가 왜 살아야 하는지 일기장에 몇 번이나 써보고선 그래도 못 견뎌 옥상으로 올라갔다. 하늘을 한 번 보고, 땅을 한 번 바라봤다. 신발을 벗어 두 짝을 나란히 정리한 후에 쪼그리고 앉아 계속 신발을 쳐다봤다. 신발 옆에는 내 선택에 말을 많이 할 것 같은 사람들을 위해 작은 편지를 써뒀다. 바람에 날아갈 까 봐 돌을 올려두려는 그 순간 세찬 바람이 날아와 편지를 날려버렸다.

탯줄을 자르는 화학적 자극과 주변의 온도, 촉각 자극이 합쳐져 아기는 호흡을 터트린다. 나는 끊임없이 운다. 슬퍼도 울고 화가 나도 울고 기뻐도 운다. 나의 모든 감각을 자극하는 것은 사람. 나를 살아있게 하는 것도 사람. 나를 죽고 싶게 만드는 것도 사람. 이 울음이, 이 호흡이 끊어지지 않았던 이유는 사람. 사람. 사람. 사람. 사람. 사람.

핑거심벌의 째깍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서민기의 생황이 함께 발맞춘다. 어둡고 작은 곳에서 울고 울었던 시간을 생각한다. 동생을, 친구를, 가족을, 동료를 생각한다. 나는 계속 울고 계속 말하고 계속 쓰고 계속 살아갈 것이다.

      1. 김인숙